카테고리 : 일상의 비극

엔도 슈사쿠-백색인 1

엔도 슈사쿠의 백색인입니다.
일본에서도 웹상으로 공개가 되어있고
한국에 역시 책으로 나와있지 않으므로 번역합니다.
내가 읽으려고 한 발번역이므로 다른 곳에 가져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저작권 트러블이 생기면 삭제합니다.
생겨도 좋으니까 황색인이랑 책으로 같이 좀 나와주세요. 사무라이도 번역 좀....

출처는 http://www.japanpen.or.jp/e-bungeikan/novel/endoshusaku.html
심심하면합니다. 내가 읽고 싶어서요.
근데 웹상 글은 번역안하면 읽기 힘들어서.

1.

   1942년 1월 28일 이 기록을 적어 놓는다. 연합군(레 자리에)는 이미 발런스에 닥쳐오고 있으니 빠르면 내일이나 모레에는 리용시에 도착하겠지. 패배가 이미 결정적인 것은 나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이 펜을 놀리고 있는 내 방의 유리창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항전 포격 때문은 아니다. 나치 스스로가 폭파한 로느강 다리의 작열음이다. 그렇지만 다리를 무너뜨리고 비엔느부터 리용까지 도달하는 K2 육로를 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해일처럼 닥쳐오는 연합군을 막을 수 있을리 없다. 파리의 폰 슈테트 장군은 리용사수를 엄명했다고 하나, 사수는 고사하고 작전상 후퇴조차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어느 얼굴도 흉포하게 일그러져가고 있다. 연합군에 대한 나치의 증오는 어제부터, 리용시민들에게도 쏟아지고 있다. 죽음에 몰린 쥐가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의 일족에 달려들듯이 지금 프랏시, 반시, 베타라고 하는 나치 병사들이 리용 시민들을 괴롭히고, 그것만을 위해 마을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레뷰브릭 거리에서 에밀 졸라 거리로, 그들은 여자들을 능욕하고 민가나 상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나치의 자랑스러운 군기따윈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그들의 충혈된 눈이나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엷은 비웃음이 입술에 떠오르는 것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라든가 기독교라든가 휴머니즘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지금이다. 나치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연합군(레 자리에)일지라도 문명인(유러피안)일지라도 황색인(지욘느)일지라도, 인간은 모두 그렇다. 오늘 학살당했던 사람이 내일은 학살자, 고문하는 이로 변한다. 내일은 리용시민이 이를 갈고 도망친 것이 늦은 독일인, 그들을 배신한 협력자(콜라보라튜르)에게 달려들 날이다. 마르키 드 사드도 재밌는 말을 했다.
 "그렇게 인간의 피는 붉게 물들어
          그 눈은 고문의 쾌락에 빛난다"
 내 감은 눈 안에서는 그 늙은 개를 목졸라 죽인 하녀 이본느의 탄력있는 하얀 살결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진실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본느의 하얀 살결-크로와 룩스 가의 창문으로, 그리신느의 꽃이 지는 길에서 우연히 찾아낸 그 작은 사건은 소년시대에 거의 결정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렇지만 다른 소년들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을 일이 어째서 나에게만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긴 것인지. 지금 프랑스인이면서도 나치의 비밀경찰(게슈타포)의 한편이 되어, 동포를 팔아먹는 길을 나에게 선택하게 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년시대의 기억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내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지만 릴의 공업기술학교에 있을 때 독일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들은 리용에 살았고, 나는 추악한 아이었다. 거기에다가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다. 후에 아버지는 떠올릴때마다 나는 어떤 18세기의 저속한 방탕아(리벨탄)의 초상화를 연상해버린다. 리용 오페라좌 옆에 노파들이 천박한 잡지와 함께 팔고 있는 변변치 못한 외설적인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얼굴이다. 실제 그는 덩치가 좋고 키가 작고 약간 뚱뚱한 남자였다. 하얗고 뭉실뭉실한 육체에 여자같이 작은 손을 가지고, 눈물샘이 발달한 눈만은 늘 눈물에 젖어있었다. 자동차 사고로 죽을 때까지 병다운 병도, 죽음의 공포조차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의 고무공같은 육체에 손을 댄적이 있다. 손가락의 흔적은 한참동안 그의 하얀 피부 위에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엄격한 청교도파였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방탕에 대한 혐오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쾌락밖에 돌보지 않는 남자와 말라비틀어진 사시 아들에 대한 애정은 가지지 않았다.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어느날 그는 손가락을 내 눈 앞에서 움직이면서 말했다.「우측을 보라고 했는데, 좌측이야. 」 그뒤로 그는 일부러 큰 한숨을 쉬었다.「평생 여자들한테 인기 없을거야. 너는.」
 내 얼굴의 추함을 확실하게 인식했던 것은 이 때부터였다. 나는 그것을 잔혹하게 선언한 아버지를 미워했다. 거울을 보는 것도 괴롭고, 길에서 소녀들과 스쳐지나가는 것도 새 하녀와 처음 만나게 될때도 괴로웠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그는 일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한달의 반정도 집을 비웠다. 그건 분명 내가 11살때였다. 어머니는 그 날 집에 없었다. 그 날 아버지는 공장에서 갑자기 한 밤색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 동안 두 사람은 한 방에 들어간 후로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돌아가기 전 현관에서 나의 머리를 쓸면서「귀여운 아이네」라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그 여자를 증오했다. 손주머니 안의 봉봉을 한 개 주었다.
 그녀에 대한 일도 봉봉에 대한 일도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편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동정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비밀을 비밀로 해두는 것 자체에 왠지 모르게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밤, 침대 안에서 그 봉봉을 소리나지 않게 입에 넣으면서 나는 이 비밀의 달콤함을 느긋하게 맛보았다. 그렇지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무신론은 아버지의 교육때문이 아니다. 청교도인 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옳다.
 1930년대 리용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 가정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갑자기 어머니는 나에게 엄격한 금욕주의를 밀어붙였다. 10살 지나서부터 사촌 자매 상대로 조차 두사람만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나를 유혹하는 것 중 하나로 육욕에 대한 자각을 경계했던 것이다. 밤, 잠자리에 들때도 하반신으로 부터 눈을 돌리고 잠옷으로 갈아입어야했다. 양 손을 담요 안으로 넣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당했다. 어머니는, 이미 욕망의 피가 끓어넘치기 시작한 내 육체로부터 그 불을 지피는 모든 것들을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어리석은 어머니, 라고 나는 후에 계속 생각했다. 그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여성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자신의 얼굴 모양새를 알고 있다. 그녀는 짓밟힌 재로부터 한층 더 불이 타오른다는 옛 교훈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나는 산 체레네 거리의 프로테스탄트 초등학교에서 목사가 우리들에게 주었던 책 이외에는 전혀 읽을 수없었고, 보통 그 시기의 소년들이 애독하는 「재투성이(산드리안)」이나 「아라비안 나이트」조차도 내 관능을 자극해 눈뜨게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녀는 나에게 그런 책들을 친구에게 빌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리용은 아직 18세기시대의 리용과 거의 변하지 않았다. 수십년간 미지뜨긋한 온기를 담은, 인간들의 악취가 고여있는 크로와 룩스 관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혼자서, 죽 살아왔다.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아이와 소꿉놀이한다든가 고리 던지기를 한다든가 하는 것조차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악마의 최대 암수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든 죄로부터 단절되었어야 했을 나에게 어느날 돌연, 악의 쾌감을 알려주었다.
 집 근처에는 주인 없는 늙은 개가 있다. 예전의 주인은 구둣방 노인이었지만 그가 지병으로 죽은 후에도 개는 원래 집에서 멀어지지 않고 매일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나는 등교나 하교 할 때마다 그와 만나는 것을 상당히 무서워했다. 피부병 때문인지 털이 거의 빠져 붉은 생살이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다가 그 개는 죽은 옛주인과 같이 끊임없이 기침을 하면서 걷고 있는 것이다. 옆에 다가가면 피부병균이 없더라도 결핵균이 옮을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봄이 끝날 때 쯤이었다. 나는 12살이었다. 그 날 나는 병으로 학교를 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2층 침대에 눕혀 놓은 채로 아래 객실에서 우연히 찾아온 목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용했다.
 침대에서 따분한 채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는 창가에 있어서 조금 끝 쪽으로 움직이면 집 앞 길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한낮이라도 길에는 아무도 없다. 마주하는 집의 높은 벽을 따라 피어있는 보라색 그리신느 꽃이 바람에 흔들려 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비한 광경을 보았다. 집의 하냐 이본느가 길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에게 손짓하고 있다. 떄때로 그녀는 한손으로 한 점의 고기를 꺼내 그걸 흔들어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늙은 개는 기침하면서 이본느 쪽으로 흔들흔들 다가온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녀의 양 다리 사이로 목을 늘어뜨리고 애원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이본느는 고기 조각 대신 한 줄의 끈을 손에 쥐었다. 한 쪽 무릎으로 버둥거리는 개의 목을 누른 채로 그녀는 늙은 개의 잎을 단숨에 묶었다. 나는 창에 상반신을 기댄채로 떨고 있었다. 이본느는 고기 조각을 더 이상 열지 못하는 개의 입 앞에 놀리는 듯이 갖다 댄다. 개는 양 발을 경련하면서 뒷걸음 치려고 한다. 이본느는 오른손을 들어 세게 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목이 그녀의 하얗고 두툼한 허벅다리로 눌러지고 있어서 개는 그저 다리만을 무력하게 저으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 곧 이본느는 한 쪽 다리를 들고 개의 입에 묶었던 끈을 풀고 난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우리 집 현관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나는 왜 그 하녀가 그런 짓을 해보였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우리집에서 고기 조각을 움친 그 늙은 개에게 복수를 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 행위는 창문으로 지켜보던 12살 소년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나는 떨면서 그 모든 일을 보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불쌍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강요한 순결주의(퓨리타니즘)의 두꺼운 성벽이 그 날 소리를 내며 부서진 것이다. 내가 그 때 맛보았던 것은 정욕의 쾌감이었다. 그 지병을 앓고 있는 늙은 개의 목을 눌렀던 이본느의 탄탄한 무릎이 내 눈을 태울 것 같이 하얗게, 너무나도 하얗게 남았다. 내 육욕의 자각은 학대의 쾌락과 동반하여 개화했던 것이다.
 내 어두운 비밀을 사람에게 말할 정도로 나는 바보도 아니었고 순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교의 목사도 완전하게, 이 내가 악한 쾌감을 맛보지 않은 한 명의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성당에서도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상(이마쥬)에 따라서 겸허하게 기도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산 체레네의 칼빈 초등학교 성당에서 내가 우러러 본 것은 결코 신이 아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지옥의 상상화, 그리고 거기서 죽은 죄인은 알몸인 채로 검은 악마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채찍을 맞거나, 또는 수족을 찢어발겨지고 있었다. 한 때 나에게 일종의 공포였던 것은 지금, 이상스런 쾌감을 자극 했다. 나는 채찍을 휘두르는 악마의 부릅 뜬 눈 속에서 그날, 처음 맛 본 비명같은 즐거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눈뜨지 못하는 그런 감각이 자신에게만 열린 것을 지금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프로이트류에 의하면 이러한 새디즘은 아이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 이론대로라면 나는 자신을 엄격하게 교육시킨 어머니를 마음 한구석에서 증오하고 있던것이 아닌가. 아이로서의 즐거움이나 자유를 금지당해 그 크로와 룩스의 한방에서 유년기를 보내게하려고 했던 어머니 안에서 여성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길러왔던 것 일까. 그러나 우선 말해두지만 내 경우, 새디즘은 이런 입바른 정신분석학이나 이론 대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여성이 싫어서 자신의 가학본능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여성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과장하여 말한 다면 전 인류를 괴롭히고싶다는 욕망을 나는 후에 느꼈던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남은 시간은 없다. 또 다시 커다란 작열음이 이 방의 창문을 흔들리게 해, 벽이나 천장으로부터 작은 가루들이 떨어져 내린다. 지금 파괴당한 것은 라파이엣 다리겠지.
 그러나 그런 것은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나치가 패주하든지 연합군이 리용을 탈환하든지 파시즘이 무너져서 이른 바 민주주의가 승리를 확신하든지 그런 것은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다. 항독운동가, 커뮤니스트,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역사의 진보, 정의의 증명을 맡기든지말든지 나는 무관심하다.
 만약 모레 리용의 운명에 내가 관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독일비밀경찰(게슈타포)에 협력한 배신자로서 규탄당하는 것 뿐이다. 마키나 그 동료를 재판하고 고문하고 학대했던 그 「소나무 열매 마을(봄 드 텔)」사건의 일원으로서 동포로부터 복수당하겠지. 물론 도망갈 작정이다. 나는 살지 않으면 안된다. 애초에 역사가 이 나를, 아니 내 안의 고문자를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게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나는 이 기록에 적어두고 싶은 것이다.

by pill | 2008/11/16 02:53 | 일상의 비극 | 트랙백

쁠리에 세번째 방문

다크 초코 실크 푸딩과
녹차 실크 푸딩 구입.

그리고 세번째 간걸 거기 점원분이 안다........
(사실 두번째부터 그분이 나 알더라. 후우.)

지금까지 이것저것 먹어본 결과
(아직 다는 안먹어봤고, 고구마는 앞으로도 먹을 생각없음.
죄송합니다. 근데 사실 제가 고구마 들어간 스위트를 별로 안좋아해요.)
개인적 추천은 포도 실크 푸딩과 화이트 초코 푸딩입니다.
개인적으로 평이 안좋은 건 체리 실크 푸딩과 녹차 푸딩.
체리 실크 푸딩은 체리층의 맛이 별로 진하지않고
(포도 실크 푸딩은 포도맛이 확 났는데)
녹차푸딩은 왠지 쇠비린내같은 녹차층의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그런것치고 녹차의 맛이 아주 진한 것도 아니고.

근데 여기도 병 들고가면 푸딩 좀 안바꿔주나요. 흑.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는 푸딩병. 역시 왠지 버리기는 아깝단말이죠.

by pill | 2008/11/15 19:35 | 일상의 비극 | 트랙백

결국 한국어가 읽고싶어서

인외경이고 열광의 여신이고 보류.
그리고 보르헤스 전집을 읽으려고 했지만
번역이 된게 아무리봐도 한국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자라서 무기한 보류.
(....글자체는 취향인데 지나치게 번역체라서...
번역도 처음하신것 같더군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비극이 읽고싶어서 소포클레스 전집을 빌렸지만 필독도서라 1주일내 반납
할 수는 있지만 어차피 아무도 안빌려가는데....라는데 좀 쓸쓸함을 느낌.
나도 사실 소포클레스보다는 유리피데스가 좋아. 있으니까 읽지만.
그리고 이전부터 읽고싶었던 샤라쿠 살인사건 대여.
다 좋은데 들고다니기 귀찮으니 빨리 읽어야지...

아 심슨 시즌 11 dvd다보고 코멘터리 버젼 듣고있는데 이것도 재밌더군요.
칼이랑 레니 어쩔.....

by pill | 2008/11/12 10:20 | 일상의 비극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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