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7일
엔도 슈사쿠-백색인 2
설마... 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중에 역시 그게 그게 맞나보네요.
프랑스어에 대한 표기는 무관심하므로 대충 썼습니다. 안찾아왔어요.
그리고 몇개 모르는게 있네요. 찾아봐도 몰라서 패스.
사드의 고향에서 이것저것 조사해보면서 이 글을 구상하셨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 첫상대가....... 어 음.
2.
아무도 내 어두운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나 교사나 목사가 나를 천사같은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마르고 창백한 공부 좋아하는 소년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들은 속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이본느와 개의 광경이 내 존재 안에서 불타오르게 한 정욕은 그 뒤로 잠시동안이라고 해도, 재 밑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가는 동안 어느새인가 나 자신에 대한 것도 있어버린 것일까.
나는 다른 소년에 비해서 육체의 발육도 늦었다. 리용 오페라좌 뒤 앙리 4세 중학교에 들어가도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며 말하는 여학생(레 피유)에 대한 이야기나 리엔느 거리의 매음(뷰탄)의 이야기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인기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소년들이 반드시 한 번 걸린다는 「유아(페달)놀이」의 열병에도 완전히 무관심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때때로 봄의 황혼, 그 12살의 병에 걸렸던 날이 여기에 일으켰던 것과 같이 유리창으로부터 그리신느 꽃이 지는 사람없는 작은 길을 내려다보면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 속에서 나의 손은 뭔지 모를 것을 괴롭히기 위해서 경련하고 있었다. 잠옷에서 시트까지 땀으로 적셔가면서 그 망상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앙리 4세 중학교가 끝나기 전, 그 해 여름 방학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데리고 아라비아의 아덴까지 여행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장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경영하고 있던 공장에, 아덴에서 아마를 들여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 여행은-
그 날 그 일을 이룬 것은 도덕, 종교, 가정, 학교가 거기에 사는 모든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보수적인 리용의 무거운 공기로부터 돌연, 남동 아라비아의 사막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8월의 홍해로부터 불어온 미칠 정도의 뜨거움 때문일까.
배는 8월 중순, 아덴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서구적인 숙소인 잉글랜드 호텔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계약처의 출장상회 사람들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이제 어머니의 감독도 없고 목사의 속박도 없다. 나는 자유이며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눈도 멀게할 정도의 뜨거움 속에서 처음 주어진 그 해방감을 나는 느긋하게 맛보았다. 아프리카 흑인, 갈색의 아라비아인, 검은 천을 얼굴에 두른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하얀 미로를 조심스럽게 혼자서 걸었다. 이 거리는 어디서에도 반짝반짝 푸르게 빛나는 바다와 바닷가에 쌓인 성과 같은 염전같은 것이 보인다. 태양은 백열등처럼 뒤의 벌거숭이 산에 항상 정지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색은 무겁고 납색이었다.
나는 그날 토착민들이 왕래하는 미로에서 곡예를 봤다. 곡예사는 젊고 거의 나체에 가까운 아라비아 소녀와 한 명의 소년이었다. 소녀의 나테는 땀과 기름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은색의 뱀과 닮은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췄다. 구경꾼들은 5-6명의 토착민이었다. 그들은 해골처럼 마른 다리를 꼬고 앉아 미노라고 불리는 구운 과자를 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돌연 소녀는 같이 있던 소년을 땅에 눕혔다. 그의 다리는 점점 활처럼 굽어가며 머리 위에 까지 도달했다. 그 자세는 교미하기 직전의 전설과 같았다. 나체의 소녀는 소년의 팔과 머리 위로 날아 올라갔다. 소년의 몸은 거의 굽을 수 없는 데까지 활처럼 굽었다.
「키이!」
분명 그는 꽉 문 입술로부터 고통의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소녀는 용서없이 그 머리 위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눈은 가늘고 길게 되어 잔인한 빛으로 불타올랐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태양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반짝반짝하고 아덴 뒤의 벌거숭이 산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겁운 납빛의 하늘 아래에서 공기는 부풀어 올라 내 몸을 억눌렀다. 나는 호텔까지 멍한 상태로 달려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아버지는 보트 사이드까지 다녀올 예정이었다. 물론 그는 나에게 이 이집트 제 1의 해항을 산책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이용해서 한 번 더 그 미로까지 다녀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한낮이다. 나는 셔츠를 벗고 아름다운 빛깔의 Y셔츠로 갈아입었다. 아버지가 식사비로 주었던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그 곡예 하는 장소로 향했다.
소녀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지나가는 통행인에게 구걸을 하는 거지가 되어있었다. 짧은 영어로 그는 나에게 아덴을 안내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때때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태양은 오늘도 백열등처럼 무겁게 정지하고 있다. 돌연 소년은 「나이스 걸」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어제 아라비아 소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 작정인 것 같았다. 불쾌한 듯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염전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멈췄다. 두사람은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와이셔츠를 벗고 반라가 되었다. 그 다음에 우리들이 있는 바로 앞에 소금이 붙어있는 갈색의 암벽이 두텁고 기분나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들었다.
앞에 암석은 열풍에 타고 짓무른 마른 풀 속에 서 강렬한 원색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젖은 와이셔츠를 오른 손에 든 채로 향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랐다. 바위는 등 뒤에서 짙고 검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멈췄다. 머리도 나체의 가슴 부근도 끈적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뭘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입이 바싹 말라왔다. 소년은 내 팔에 눌린 채로, 암석 뒤 비밀의 그림자 속으로 쓰러졌다.
-바다는 선명한 푸른 색이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열풍을 나는 거칠게 들이 쉬었다. 나는 태양을 보았다. 그것은 역시나 날카롭고 하얀 원판처럼 정지해있다. 소년이 바위 그림자 속에서 정신을 잃어 회색의 풀 속에 엎어져있는 것을 돌아보면서, 하얀 길을 걸어 호텔에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저릿한 기억 속에서, 나에게 얽히며 그 아라비아 소년의 눈 안이 피학의 쾌락에 빛나 떨고 있었던 것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덴 여행 후, 거의 백치같은 상태가 되었다. 뭘 해도 나른하다. 어떤 것에 대한 관심도 기력도 없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고 담배를 몇대 계속해서 피우며 탁한 눈을 허공에 움직이며 멍하니 있다. 때때로 그 원색의 생생한 바위의 빛과 그 바위 뒤의 너무나도 짙은 그림자 안에서 엎드려 쓰러져 있는 알몸의 아라비아 소년의 자세가 떠올랐다. 나는 입술을 떨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년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들, 앙리 4세 중학교 최고학급생들에게 있어서 대학입학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학년이기도 했다. 우리 철학 클래스 학생들을 위해서 특별히 리용 대학 철학과의 마데니에씨가 강의를 해주셨다. 강단 위에서 그 노인은 포도주의 애용과 육식에 의해 장미빛으로 물든 동그란 얼굴을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여(몬 쁘띠)」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충만한 얼굴이 엄청나게 싫었다. 그 카톨릭 철학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이나 도덕, 인간의 정신적 진보, 인간의 역사적 성열이라는 단어를 나는 귓가에서 환청이라도 울린 것처럼 우습게 생각하면서 들었다. 17세, 18세 모든 순정한 학생들은 적어도 이런 말들의 진실성과 가치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심하지 않았을 터인데, 나만이 왠지 모르게 그것을 우습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모럴리스트의 신념을 뒤집을 정도로의 이론이나 사색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자신이 사팔뜨기 청년인 것, 그 12세의 날에 그리신느 꽃이 지는 창으로부터 봤던 이본느와 늙은 개의 광경을 알고 있다. 아덴의 미로에서 소년의 머리를 미친듯이 찼던 갈색 소녀의 나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하얗게 불타오르는 원판의 태양 아래서 열풍에 타서 비틀어진 마른 풀도 바위 아래서의 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 해 아버지는 죽었다. 정부와 드라이브하고 있던 자동차가 나무에 충돌했던 것이다.1938년의 여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마주해서도 나는 비통함이나 비애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제 신이나 영생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나는 그 해 가을 베르날 거리에 있는 리용 법과대학에서 이뤄졌던 대학입학자격 시험에서 마데니에 씨가 우리들에게 가르쳤던 「선」「도덕」「지성의 우위」「역사적 전개」라고 하는 말을 그 노인의 부드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답안 위에 썼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가 장래에 변호사(아포카)가 될 것이라 꿈꿨던 가엾은 어머니는 울면서 기뻐했지만 나는 어둡고 빈정거리듯 미소지었다.
모든 일이 어찌되었든 좋았다. 그 이본느와 늙은 개의 기억 이후 어찌되었든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속여온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내 아덴에서의 비밀을 모르고 죽었다. 어머니는 내가 언젠가 레퓨브릭거리에 사무소를 열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면 나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응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다. 그 다음해 히틀러 산하의 나치 군이 폴란드 진격을 명한 것이다.
프랑스어에 대한 표기는 무관심하므로 대충 썼습니다. 안찾아왔어요.
그리고 몇개 모르는게 있네요. 찾아봐도 몰라서 패스.
사드의 고향에서 이것저것 조사해보면서 이 글을 구상하셨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 첫상대가....... 어 음.
2.
아무도 내 어두운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나 교사나 목사가 나를 천사같은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마르고 창백한 공부 좋아하는 소년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들은 속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이본느와 개의 광경이 내 존재 안에서 불타오르게 한 정욕은 그 뒤로 잠시동안이라고 해도, 재 밑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가는 동안 어느새인가 나 자신에 대한 것도 있어버린 것일까.
나는 다른 소년에 비해서 육체의 발육도 늦었다. 리용 오페라좌 뒤 앙리 4세 중학교에 들어가도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며 말하는 여학생(레 피유)에 대한 이야기나 리엔느 거리의 매음(뷰탄)의 이야기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인기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소년들이 반드시 한 번 걸린다는 「유아(페달)놀이」의 열병에도 완전히 무관심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때때로 봄의 황혼, 그 12살의 병에 걸렸던 날이 여기에 일으켰던 것과 같이 유리창으로부터 그리신느 꽃이 지는 사람없는 작은 길을 내려다보면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 속에서 나의 손은 뭔지 모를 것을 괴롭히기 위해서 경련하고 있었다. 잠옷에서 시트까지 땀으로 적셔가면서 그 망상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앙리 4세 중학교가 끝나기 전, 그 해 여름 방학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데리고 아라비아의 아덴까지 여행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장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경영하고 있던 공장에, 아덴에서 아마를 들여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 여행은-
그 날 그 일을 이룬 것은 도덕, 종교, 가정, 학교가 거기에 사는 모든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보수적인 리용의 무거운 공기로부터 돌연, 남동 아라비아의 사막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8월의 홍해로부터 불어온 미칠 정도의 뜨거움 때문일까.
배는 8월 중순, 아덴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서구적인 숙소인 잉글랜드 호텔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계약처의 출장상회 사람들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이제 어머니의 감독도 없고 목사의 속박도 없다. 나는 자유이며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눈도 멀게할 정도의 뜨거움 속에서 처음 주어진 그 해방감을 나는 느긋하게 맛보았다. 아프리카 흑인, 갈색의 아라비아인, 검은 천을 얼굴에 두른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하얀 미로를 조심스럽게 혼자서 걸었다. 이 거리는 어디서에도 반짝반짝 푸르게 빛나는 바다와 바닷가에 쌓인 성과 같은 염전같은 것이 보인다. 태양은 백열등처럼 뒤의 벌거숭이 산에 항상 정지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색은 무겁고 납색이었다.
나는 그날 토착민들이 왕래하는 미로에서 곡예를 봤다. 곡예사는 젊고 거의 나체에 가까운 아라비아 소녀와 한 명의 소년이었다. 소녀의 나테는 땀과 기름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은색의 뱀과 닮은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췄다. 구경꾼들은 5-6명의 토착민이었다. 그들은 해골처럼 마른 다리를 꼬고 앉아 미노라고 불리는 구운 과자를 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돌연 소녀는 같이 있던 소년을 땅에 눕혔다. 그의 다리는 점점 활처럼 굽어가며 머리 위에 까지 도달했다. 그 자세는 교미하기 직전의 전설과 같았다. 나체의 소녀는 소년의 팔과 머리 위로 날아 올라갔다. 소년의 몸은 거의 굽을 수 없는 데까지 활처럼 굽었다.
「키이!」
분명 그는 꽉 문 입술로부터 고통의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소녀는 용서없이 그 머리 위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눈은 가늘고 길게 되어 잔인한 빛으로 불타올랐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태양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반짝반짝하고 아덴 뒤의 벌거숭이 산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겁운 납빛의 하늘 아래에서 공기는 부풀어 올라 내 몸을 억눌렀다. 나는 호텔까지 멍한 상태로 달려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아버지는 보트 사이드까지 다녀올 예정이었다. 물론 그는 나에게 이 이집트 제 1의 해항을 산책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이용해서 한 번 더 그 미로까지 다녀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한낮이다. 나는 셔츠를 벗고 아름다운 빛깔의 Y셔츠로 갈아입었다. 아버지가 식사비로 주었던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그 곡예 하는 장소로 향했다.
소녀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지나가는 통행인에게 구걸을 하는 거지가 되어있었다. 짧은 영어로 그는 나에게 아덴을 안내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때때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태양은 오늘도 백열등처럼 무겁게 정지하고 있다. 돌연 소년은 「나이스 걸」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어제 아라비아 소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 작정인 것 같았다. 불쾌한 듯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염전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멈췄다. 두사람은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와이셔츠를 벗고 반라가 되었다. 그 다음에 우리들이 있는 바로 앞에 소금이 붙어있는 갈색의 암벽이 두텁고 기분나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들었다.
앞에 암석은 열풍에 타고 짓무른 마른 풀 속에 서 강렬한 원색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젖은 와이셔츠를 오른 손에 든 채로 향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랐다. 바위는 등 뒤에서 짙고 검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멈췄다. 머리도 나체의 가슴 부근도 끈적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뭘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입이 바싹 말라왔다. 소년은 내 팔에 눌린 채로, 암석 뒤 비밀의 그림자 속으로 쓰러졌다.
-바다는 선명한 푸른 색이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열풍을 나는 거칠게 들이 쉬었다. 나는 태양을 보았다. 그것은 역시나 날카롭고 하얀 원판처럼 정지해있다. 소년이 바위 그림자 속에서 정신을 잃어 회색의 풀 속에 엎어져있는 것을 돌아보면서, 하얀 길을 걸어 호텔에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저릿한 기억 속에서, 나에게 얽히며 그 아라비아 소년의 눈 안이 피학의 쾌락에 빛나 떨고 있었던 것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덴 여행 후, 거의 백치같은 상태가 되었다. 뭘 해도 나른하다. 어떤 것에 대한 관심도 기력도 없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고 담배를 몇대 계속해서 피우며 탁한 눈을 허공에 움직이며 멍하니 있다. 때때로 그 원색의 생생한 바위의 빛과 그 바위 뒤의 너무나도 짙은 그림자 안에서 엎드려 쓰러져 있는 알몸의 아라비아 소년의 자세가 떠올랐다. 나는 입술을 떨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년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들, 앙리 4세 중학교 최고학급생들에게 있어서 대학입학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학년이기도 했다. 우리 철학 클래스 학생들을 위해서 특별히 리용 대학 철학과의 마데니에씨가 강의를 해주셨다. 강단 위에서 그 노인은 포도주의 애용과 육식에 의해 장미빛으로 물든 동그란 얼굴을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여(몬 쁘띠)」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충만한 얼굴이 엄청나게 싫었다. 그 카톨릭 철학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이나 도덕, 인간의 정신적 진보, 인간의 역사적 성열이라는 단어를 나는 귓가에서 환청이라도 울린 것처럼 우습게 생각하면서 들었다. 17세, 18세 모든 순정한 학생들은 적어도 이런 말들의 진실성과 가치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심하지 않았을 터인데, 나만이 왠지 모르게 그것을 우습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모럴리스트의 신념을 뒤집을 정도로의 이론이나 사색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자신이 사팔뜨기 청년인 것, 그 12세의 날에 그리신느 꽃이 지는 창으로부터 봤던 이본느와 늙은 개의 광경을 알고 있다. 아덴의 미로에서 소년의 머리를 미친듯이 찼던 갈색 소녀의 나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하얗게 불타오르는 원판의 태양 아래서 열풍에 타서 비틀어진 마른 풀도 바위 아래서의 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 해 아버지는 죽었다. 정부와 드라이브하고 있던 자동차가 나무에 충돌했던 것이다.1938년의 여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마주해서도 나는 비통함이나 비애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제 신이나 영생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나는 그 해 가을 베르날 거리에 있는 리용 법과대학에서 이뤄졌던 대학입학자격 시험에서 마데니에 씨가 우리들에게 가르쳤던 「선」「도덕」「지성의 우위」「역사적 전개」라고 하는 말을 그 노인의 부드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답안 위에 썼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가 장래에 변호사(아포카)가 될 것이라 꿈꿨던 가엾은 어머니는 울면서 기뻐했지만 나는 어둡고 빈정거리듯 미소지었다.
모든 일이 어찌되었든 좋았다. 그 이본느와 늙은 개의 기억 이후 어찌되었든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속여온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내 아덴에서의 비밀을 모르고 죽었다. 어머니는 내가 언젠가 레퓨브릭거리에 사무소를 열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면 나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응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다. 그 다음해 히틀러 산하의 나치 군이 폴란드 진격을 명한 것이다.
# by | 2008/11/17 19:04 | 각종 미디어의 비극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