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백색인 2

설마... 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중에 역시 그게 그게 맞나보네요.
프랑스어에 대한 표기는 무관심하므로 대충 썼습니다. 안찾아왔어요.
그리고 몇개 모르는게 있네요. 찾아봐도 몰라서 패스.

사드의 고향에서 이것저것 조사해보면서 이 글을 구상하셨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 첫상대가....... 어 음.

2.

 아무도 내 어두운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나 교사나 목사가 나를 천사같은 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마르고 창백한 공부 좋아하는 소년 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들은 속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이본느와 개의 광경이 내 존재 안에서 불타오르게 한 정욕은 그 뒤로 잠시동안이라고 해도, 재 밑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가는 동안 어느새인가 나 자신에 대한 것도 있어버린 것일까.
 나는 다른 소년에 비해서 육체의 발육도 늦었다. 리용 오페라좌 뒤 앙리 4세 중학교에 들어가도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며 말하는 여학생(레 피유)에 대한 이야기나 리엔느 거리의 매음(뷰탄)의 이야기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인기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소년들이 반드시 한 번 걸린다는 「유아(페달)놀이」의 열병에도 완전히 무관심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때때로 봄의 황혼, 그 12살의 병에 걸렸던 날이 여기에 일으켰던 것과 같이 유리창으로부터 그리신느 꽃이 지는 사람없는 작은 길을 내려다보면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 속에서 나의 손은 뭔지 모를 것을 괴롭히기 위해서 경련하고 있었다. 잠옷에서 시트까지 땀으로 적셔가면서 그 망상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앙리 4세 중학교가 끝나기 전, 그 해 여름 방학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나를 데리고 아라비아의 아덴까지 여행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장사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경영하고 있던 공장에, 아덴에서 아마를 들여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그 여행은-
 그 날 그 일을 이룬 것은 도덕, 종교, 가정, 학교가 거기에 사는 모든 인간의 본능이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보수적인 리용의 무거운 공기로부터 돌연, 남동 아라비아의 사막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8월의 홍해로부터 불어온 미칠 정도의 뜨거움 때문일까.
 배는 8월 중순, 아덴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서구적인 숙소인 잉글랜드 호텔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계약처의 출장상회 사람들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이제 어머니의 감독도 없고 목사의 속박도 없다. 나는 자유이며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눈도 멀게할 정도의 뜨거움 속에서 처음 주어진 그 해방감을 나는 느긋하게 맛보았다. 아프리카 흑인, 갈색의 아라비아인, 검은 천을 얼굴에 두른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하얀 미로를 조심스럽게 혼자서 걸었다. 이 거리는 어디서에도 반짝반짝 푸르게 빛나는 바다와 바닷가에 쌓인 성과 같은 염전같은 것이 보인다. 태양은 백열등처럼 뒤의 벌거숭이 산에 항상 정지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색은 무겁고 납색이었다.
 나는 그날 토착민들이 왕래하는 미로에서 곡예를 봤다. 곡예사는 젊고 거의 나체에 가까운 아라비아 소녀와 한 명의 소년이었다. 소녀의 나테는 땀과 기름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은색의 뱀과 닮은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췄다. 구경꾼들은 5-6명의 토착민이었다. 그들은 해골처럼 마른 다리를 꼬고 앉아 미노라고 불리는 구운 과자를 씹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돌연 소녀는 같이 있던 소년을 땅에 눕혔다. 그의 다리는 점점 활처럼 굽어가며 머리 위에 까지 도달했다. 그 자세는 교미하기 직전의 전설과 같았다. 나체의 소녀는 소년의 팔과 머리 위로 날아 올라갔다. 소년의 몸은 거의 굽을 수 없는 데까지 활처럼 굽었다.
「키이!」
 분명 그는 꽉 문 입술로부터 고통의 신음이 흘렀다. 그러나 소녀는 용서없이 그 머리 위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눈은 가늘고 길게 되어 잔인한 빛으로 불타올랐다.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태양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반짝반짝하고 아덴 뒤의 벌거숭이 산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겁운 납빛의 하늘 아래에서 공기는 부풀어 올라 내 몸을 억눌렀다. 나는 호텔까지 멍한 상태로 달려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아버지는 보트 사이드까지 다녀올 예정이었다. 물론 그는 나에게 이 이집트 제 1의 해항을 산책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이용해서 한 번 더 그 미로까지 다녀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한낮이다. 나는 셔츠를 벗고 아름다운 빛깔의 Y셔츠로 갈아입었다. 아버지가 식사비로 주었던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그 곡예 하는 장소로 향했다. 
 소녀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지나가는 통행인에게 구걸을 하는 거지가 되어있었다. 짧은 영어로 그는 나에게 아덴을 안내해주겠다고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은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때때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로 말을 걸었다. 태양은 오늘도 백열등처럼 무겁게 정지하고 있다. 돌연 소년은 「나이스 걸」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어제 아라비아 소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할 작정인 것 같았다. 불쾌한 듯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염전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멈췄다. 두사람은 땀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와이셔츠를 벗고 반라가 되었다. 그 다음에 우리들이 있는 바로 앞에 소금이 붙어있는 갈색의 암벽이 두텁고 기분나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나서,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들었다.
 앞에 암석은 열풍에 타고 짓무른 마른 풀 속에 서 강렬한 원색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젖은 와이셔츠를 오른 손에 든 채로 향했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랐다. 바위는 등 뒤에서 짙고 검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멈췄다. 머리도 나체의 가슴 부근도 끈적하게 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뭘 말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입이 바싹 말라왔다. 소년은 내 팔에 눌린 채로, 암석 뒤 비밀의 그림자 속으로 쓰러졌다.
   -바다는 선명한 푸른 색이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열풍을 나는 거칠게 들이 쉬었다. 나는 태양을 보았다. 그것은 역시나 날카롭고 하얀 원판처럼 정지해있다. 소년이 바위 그림자 속에서 정신을 잃어 회색의 풀 속에 엎어져있는 것을 돌아보면서, 하얀 길을 걸어 호텔에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저릿한 기억 속에서, 나에게 얽히며 그 아라비아 소년의 눈 안이 피학의 쾌락에 빛나 떨고 있었던 것을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아덴 여행 후, 거의 백치같은 상태가 되었다. 뭘 해도 나른하다. 어떤 것에 대한 관심도 기력도 없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고 담배를 몇대 계속해서 피우며 탁한 눈을 허공에 움직이며 멍하니 있다. 때때로 그 원색의 생생한 바위의 빛과 그 바위 뒤의 너무나도 짙은 그림자 안에서 엎드려 쓰러져 있는 알몸의 아라비아 소년의 자세가 떠올랐다. 나는 입술을 떨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년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말할 수 없었다.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들, 앙리 4세 중학교 최고학급생들에게 있어서 대학입학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학년이기도 했다. 우리 철학 클래스 학생들을 위해서 특별히 리용 대학 철학과의 마데니에씨가 강의를 해주셨다. 강단 위에서 그 노인은 포도주의 애용과 육식에 의해 장미빛으로 물든 동그란 얼굴을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이여(몬 쁘띠)」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충만한 얼굴이 엄청나게 싫었다. 그 카톨릭 철학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이나 도덕, 인간의 정신적 진보, 인간의 역사적 성열이라는 단어를 나는 귓가에서 환청이라도 울린 것처럼 우습게 생각하면서 들었다. 17세, 18세 모든 순정한 학생들은 적어도 이런 말들의 진실성과 가치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의심하지 않았을 터인데, 나만이 왠지 모르게 그것을 우습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모럴리스트의 신념을 뒤집을 정도로의 이론이나 사색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자신이 사팔뜨기 청년인 것, 그 12세의 날에 그리신느 꽃이 지는 창으로부터 봤던 이본느와 늙은 개의 광경을 알고 있다. 아덴의 미로에서 소년의 머리를 미친듯이 찼던 갈색 소녀의 나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하얗게 불타오르는 원판의 태양 아래서 열풍에 타서 비틀어진 마른 풀도 바위 아래서의 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 해 아버지는 죽었다. 정부와 드라이브하고 있던 자동차가 나무에 충돌했던 것이다.1938년의 여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마주해서도 나는 비통함이나 비애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제 신이나 영생같은 것도 믿지 않았다. 나는 그 해 가을 베르날 거리에 있는 리용 법과대학에서 이뤄졌던 대학입학자격 시험에서 마데니에 씨가 우리들에게 가르쳤던 「선」「도덕」「지성의 우위」「역사적 전개」라고 하는 말을 그 노인의 부드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답안 위에 썼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가 장래에 변호사(아포카)가 될 것이라 꿈꿨던 가엾은 어머니는 울면서 기뻐했지만 나는 어둡고 빈정거리듯 미소지었다.
 모든 일이 어찌되었든 좋았다. 그 이본느와 늙은 개의 기억 이후 어찌되었든 나는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속여온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내 아덴에서의 비밀을 모르고 죽었다. 어머니는 내가 언젠가 레퓨브릭거리에 사무소를 열 것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면 나는 주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응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다. 그 다음해 히틀러 산하의 나치 군이 폴란드 진격을 명한 것이다.

by pill | 2008/11/17 19:04 | 각종 미디어의 비극 | 트랙백

엔도 슈사쿠-백색인 1

엔도 슈사쿠의 백색인입니다.
일본에서도 웹상으로 공개가 되어있고
한국에 역시 책으로 나와있지 않으므로 번역합니다.
내가 읽으려고 한 발번역이므로 다른 곳에 가져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저작권 트러블이 생기면 삭제합니다.
생겨도 좋으니까 황색인이랑 책으로 같이 좀 나와주세요. 사무라이도 번역 좀....

출처는 http://www.japanpen.or.jp/e-bungeikan/novel/endoshusaku.html
심심하면합니다. 내가 읽고 싶어서요.
근데 웹상 글은 번역안하면 읽기 힘들어서.

1.

   1942년 1월 28일 이 기록을 적어 놓는다. 연합군(레 자리에)는 이미 발런스에 닥쳐오고 있으니 빠르면 내일이나 모레에는 리용시에 도착하겠지. 패배가 이미 결정적인 것은 나치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지금도 이 펜을 놀리고 있는 내 방의 유리창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항전 포격 때문은 아니다. 나치 스스로가 폭파한 로느강 다리의 작열음이다. 그렇지만 다리를 무너뜨리고 비엔느부터 리용까지 도달하는 K2 육로를 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해일처럼 닥쳐오는 연합군을 막을 수 있을리 없다. 파리의 폰 슈테트 장군은 리용사수를 엄명했다고 하나, 사수는 고사하고 작전상 후퇴조차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어느 얼굴도 흉포하게 일그러져가고 있다. 연합군에 대한 나치의 증오는 어제부터, 리용시민들에게도 쏟아지고 있다. 죽음에 몰린 쥐가 고양이가 아니라 자신의 일족에 달려들듯이 지금 프랏시, 반시, 베타라고 하는 나치 병사들이 리용 시민들을 괴롭히고, 그것만을 위해 마을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레뷰브릭 거리에서 에밀 졸라 거리로, 그들은 여자들을 능욕하고 민가나 상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나치의 자랑스러운 군기따윈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그들의 충혈된 눈이나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엷은 비웃음이 입술에 떠오르는 것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라든가 기독교라든가 휴머니즘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지금이다. 나치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연합군(레 자리에)일지라도 문명인(유러피안)일지라도 황색인(지욘느)일지라도, 인간은 모두 그렇다. 오늘 학살당했던 사람이 내일은 학살자, 고문하는 이로 변한다. 내일은 리용시민이 이를 갈고 도망친 것이 늦은 독일인, 그들을 배신한 협력자(콜라보라튜르)에게 달려들 날이다. 마르키 드 사드도 재밌는 말을 했다.
 "그렇게 인간의 피는 붉게 물들어
          그 눈은 고문의 쾌락에 빛난다"
 내 감은 눈 안에서는 그 늙은 개를 목졸라 죽인 하녀 이본느의 탄력있는 하얀 살결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진실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본느의 하얀 살결-크로와 룩스 가의 창문으로, 그리신느의 꽃이 지는 길에서 우연히 찾아낸 그 작은 사건은 소년시대에 거의 결정적인 상처를 남겼다. 그렇지만 다른 소년들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렸을 일이 어째서 나에게만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긴 것인지. 지금 프랑스인이면서도 나치의 비밀경찰(게슈타포)의 한편이 되어, 동포를 팔아먹는 길을 나에게 선택하게 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년시대의 기억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내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지만 릴의 공업기술학교에 있을 때 독일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들은 리용에 살았고, 나는 추악한 아이었다. 거기에다가 태어날 때부터 사시였다. 후에 아버지는 떠올릴때마다 나는 어떤 18세기의 저속한 방탕아(리벨탄)의 초상화를 연상해버린다. 리용 오페라좌 옆에 노파들이 천박한 잡지와 함께 팔고 있는 변변치 못한 외설적인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얼굴이다. 실제 그는 덩치가 좋고 키가 작고 약간 뚱뚱한 남자였다. 하얗고 뭉실뭉실한 육체에 여자같이 작은 손을 가지고, 눈물샘이 발달한 눈만은 늘 눈물에 젖어있었다. 자동차 사고로 죽을 때까지 병다운 병도, 죽음의 공포조차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의 고무공같은 육체에 손을 댄적이 있다. 손가락의 흔적은 한참동안 그의 하얀 피부 위에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엄격한 청교도파였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방탕에 대한 혐오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쾌락밖에 돌보지 않는 남자와 말라비틀어진 사시 아들에 대한 애정은 가지지 않았다.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어느날 그는 손가락을 내 눈 앞에서 움직이면서 말했다.「우측을 보라고 했는데, 좌측이야. 」 그뒤로 그는 일부러 큰 한숨을 쉬었다.「평생 여자들한테 인기 없을거야. 너는.」
 내 얼굴의 추함을 확실하게 인식했던 것은 이 때부터였다. 나는 그것을 잔혹하게 선언한 아버지를 미워했다. 거울을 보는 것도 괴롭고, 길에서 소녀들과 스쳐지나가는 것도 새 하녀와 처음 만나게 될때도 괴로웠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그는 일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한달의 반정도 집을 비웠다. 그건 분명 내가 11살때였다. 어머니는 그 날 집에 없었다. 그 날 아버지는 공장에서 갑자기 한 밤색 머리를 한 젊은 여성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 동안 두 사람은 한 방에 들어간 후로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돌아가기 전 현관에서 나의 머리를 쓸면서「귀여운 아이네」라고 말했다. 그 때 나는 그 여자를 증오했다. 손주머니 안의 봉봉을 한 개 주었다.
 그녀에 대한 일도 봉봉에 대한 일도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편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동정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비밀을 비밀로 해두는 것 자체에 왠지 모르게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밤, 침대 안에서 그 봉봉을 소리나지 않게 입에 넣으면서 나는 이 비밀의 달콤함을 느긋하게 맛보았다. 그렇지만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무신론은 아버지의 교육때문이 아니다. 청교도인 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옳다.
 1930년대 리용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 가정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갑자기 어머니는 나에게 엄격한 금욕주의를 밀어붙였다. 10살 지나서부터 사촌 자매 상대로 조차 두사람만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나를 유혹하는 것 중 하나로 육욕에 대한 자각을 경계했던 것이다. 밤, 잠자리에 들때도 하반신으로 부터 눈을 돌리고 잠옷으로 갈아입어야했다. 양 손을 담요 안으로 넣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당했다. 어머니는, 이미 욕망의 피가 끓어넘치기 시작한 내 육체로부터 그 불을 지피는 모든 것들을 쫓아내려고 노력했다.
 어리석은 어머니, 라고 나는 후에 계속 생각했다. 그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나는 여성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자신의 얼굴 모양새를 알고 있다. 그녀는 짓밟힌 재로부터 한층 더 불이 타오른다는 옛 교훈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나는 산 체레네 거리의 프로테스탄트 초등학교에서 목사가 우리들에게 주었던 책 이외에는 전혀 읽을 수없었고, 보통 그 시기의 소년들이 애독하는 「재투성이(산드리안)」이나 「아라비안 나이트」조차도 내 관능을 자극해 눈뜨게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녀는 나에게 그런 책들을 친구에게 빌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1930년대의 리용은 아직 18세기시대의 리용과 거의 변하지 않았다. 수십년간 미지뜨긋한 온기를 담은, 인간들의 악취가 고여있는 크로와 룩스 관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혼자서, 죽 살아왔다.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아이와 소꿉놀이한다든가 고리 던지기를 한다든가 하는 것조차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악마의 최대 암수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모든 죄로부터 단절되었어야 했을 나에게 어느날 돌연, 악의 쾌감을 알려주었다.
 집 근처에는 주인 없는 늙은 개가 있다. 예전의 주인은 구둣방 노인이었지만 그가 지병으로 죽은 후에도 개는 원래 집에서 멀어지지 않고 매일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나는 등교나 하교 할 때마다 그와 만나는 것을 상당히 무서워했다. 피부병 때문인지 털이 거의 빠져 붉은 생살이 드러나 있었고, 거기에다가 그 개는 죽은 옛주인과 같이 끊임없이 기침을 하면서 걷고 있는 것이다. 옆에 다가가면 피부병균이 없더라도 결핵균이 옮을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봄이 끝날 때 쯤이었다. 나는 12살이었다. 그 날 나는 병으로 학교를 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2층 침대에 눕혀 놓은 채로 아래 객실에서 우연히 찾아온 목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용했다.
 침대에서 따분한 채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는 창가에 있어서 조금 끝 쪽으로 움직이면 집 앞 길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한낮이라도 길에는 아무도 없다. 마주하는 집의 높은 벽을 따라 피어있는 보라색 그리신느 꽃이 바람에 흔들려 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비한 광경을 보았다. 집의 하냐 이본느가 길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에게 손짓하고 있다. 떄때로 그녀는 한손으로 한 점의 고기를 꺼내 그걸 흔들어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늙은 개는 기침하면서 이본느 쪽으로 흔들흔들 다가온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녀의 양 다리 사이로 목을 늘어뜨리고 애원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이본느는 고기 조각 대신 한 줄의 끈을 손에 쥐었다. 한 쪽 무릎으로 버둥거리는 개의 목을 누른 채로 그녀는 늙은 개의 잎을 단숨에 묶었다. 나는 창에 상반신을 기댄채로 떨고 있었다. 이본느는 고기 조각을 더 이상 열지 못하는 개의 입 앞에 놀리는 듯이 갖다 댄다. 개는 양 발을 경련하면서 뒷걸음 치려고 한다. 이본느는 오른손을 들어 세게 개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목이 그녀의 하얗고 두툼한 허벅다리로 눌러지고 있어서 개는 그저 다리만을 무력하게 저으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 곧 이본느는 한 쪽 다리를 들고 개의 입에 묶었던 끈을 풀고 난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우리 집 현관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나는 왜 그 하녀가 그런 짓을 해보였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우리집에서 고기 조각을 움친 그 늙은 개에게 복수를 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 행위는 창문으로 지켜보던 12살 소년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나는 떨면서 그 모든 일을 보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불쌍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강요한 순결주의(퓨리타니즘)의 두꺼운 성벽이 그 날 소리를 내며 부서진 것이다. 내가 그 때 맛보았던 것은 정욕의 쾌감이었다. 그 지병을 앓고 있는 늙은 개의 목을 눌렀던 이본느의 탄탄한 무릎이 내 눈을 태울 것 같이 하얗게, 너무나도 하얗게 남았다. 내 육욕의 자각은 학대의 쾌락과 동반하여 개화했던 것이다.
 내 어두운 비밀을 사람에게 말할 정도로 나는 바보도 아니었고 순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학교의 목사도 완전하게, 이 내가 악한 쾌감을 맛보지 않은 한 명의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성당에서도 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상(이마쥬)에 따라서 겸허하게 기도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그 산 체레네의 칼빈 초등학교 성당에서 내가 우러러 본 것은 결코 신이 아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지옥의 상상화, 그리고 거기서 죽은 죄인은 알몸인 채로 검은 악마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채찍을 맞거나, 또는 수족을 찢어발겨지고 있었다. 한 때 나에게 일종의 공포였던 것은 지금, 이상스런 쾌감을 자극 했다. 나는 채찍을 휘두르는 악마의 부릅 뜬 눈 속에서 그날, 처음 맛 본 비명같은 즐거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눈뜨지 못하는 그런 감각이 자신에게만 열린 것을 지금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프로이트류에 의하면 이러한 새디즘은 아이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 이론대로라면 나는 자신을 엄격하게 교육시킨 어머니를 마음 한구석에서 증오하고 있던것이 아닌가. 아이로서의 즐거움이나 자유를 금지당해 그 크로와 룩스의 한방에서 유년기를 보내게하려고 했던 어머니 안에서 여성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길러왔던 것 일까. 그러나 우선 말해두지만 내 경우, 새디즘은 이런 입바른 정신분석학이나 이론 대로는 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여성이 싫어서 자신의 가학본능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여성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과장하여 말한 다면 전 인류를 괴롭히고싶다는 욕망을 나는 후에 느꼈던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남은 시간은 없다. 또 다시 커다란 작열음이 이 방의 창문을 흔들리게 해, 벽이나 천장으로부터 작은 가루들이 떨어져 내린다. 지금 파괴당한 것은 라파이엣 다리겠지.
 그러나 그런 것은 어찌되었든 상관없다. 나치가 패주하든지 연합군이 리용을 탈환하든지 파시즘이 무너져서 이른 바 민주주의가 승리를 확신하든지 그런 것은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다. 항독운동가, 커뮤니스트,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역사의 진보, 정의의 증명을 맡기든지말든지 나는 무관심하다.
 만약 모레 리용의 운명에 내가 관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독일비밀경찰(게슈타포)에 협력한 배신자로서 규탄당하는 것 뿐이다. 마키나 그 동료를 재판하고 고문하고 학대했던 그 「소나무 열매 마을(봄 드 텔)」사건의 일원으로서 동포로부터 복수당하겠지. 물론 도망갈 작정이다. 나는 살지 않으면 안된다. 애초에 역사가 이 나를, 아니 내 안의 고문자를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게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나는 이 기록에 적어두고 싶은 것이다.

by pill | 2008/11/16 02:53 | 일상의 비극 | 트랙백

쁠리에 세번째 방문

다크 초코 실크 푸딩과
녹차 실크 푸딩 구입.

그리고 세번째 간걸 거기 점원분이 안다........
(사실 두번째부터 그분이 나 알더라. 후우.)

지금까지 이것저것 먹어본 결과
(아직 다는 안먹어봤고, 고구마는 앞으로도 먹을 생각없음.
죄송합니다. 근데 사실 제가 고구마 들어간 스위트를 별로 안좋아해요.)
개인적 추천은 포도 실크 푸딩과 화이트 초코 푸딩입니다.
개인적으로 평이 안좋은 건 체리 실크 푸딩과 녹차 푸딩.
체리 실크 푸딩은 체리층의 맛이 별로 진하지않고
(포도 실크 푸딩은 포도맛이 확 났는데)
녹차푸딩은 왠지 쇠비린내같은 녹차층의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그런것치고 녹차의 맛이 아주 진한 것도 아니고.

근데 여기도 병 들고가면 푸딩 좀 안바꿔주나요. 흑.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는 푸딩병. 역시 왠지 버리기는 아깝단말이죠.

by pill | 2008/11/15 19:35 | 일상의 비극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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